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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 [우리는 이어져 있다고 믿어]
( 코스모스도서관 | 25-02-11 18: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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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에 나를 붙여놓고 지켜봅니다 거긴 어때? 이토록 많은 얼굴 이토록 많은 당부 거긴 어때? 전선 위에 앉은 새들 점점점점점점점점점점 알알이 하루씩 사는 거라면? 하루는 죽고 싶다가 하루는 살 만하다가 매일 알알이 살고 있어 기차엔 머리가 빽빽하게...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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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달의 바다]
( 코스모스도서관 | 25-01-26 2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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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궤도비행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을 때 저는 깨달았죠. 아무리 오랫동안 이 일을 하더라도 결코 질리거나 싫증이 날 리는 없을 거라는 걸요. 비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올 땐 섭섭해서 눈물이 날 정도였어요. 상공에서 낙하산이 펴졌을 때도 안도감이... Tag: 밑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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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여정 [알제리의 유령들]
( 코스모스도서관 | 25-01-17 19: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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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과 우연히 마주치는 장면을 상상했다. 지하철에서 버스에서 서점에서 카페에서 길에서, 무심코 발길이나 고개를 돌리면 그곳에 징이 있었다. 무슨 대화를 나누게 될지, 무엇을 하게 될지, 어디로 가게 될지, 그다음은 잘 그려지지가 않아서 언제나 마주치는 ... Tag: 밑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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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민경 [온갖 열망이 온갖 실수가]
( 코스모스도서관 | 25-01-21 2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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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꽉 막힌 결말이 있기는 할까요 저는 가끔 행방불명이 되고 싶습니다 짧게 써야겠지요 선생님 영원히 살아 있는 채로 있고만 싶어요 하지만 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떠올리고 다정과 다정에 따른 가능성 같은 것을 생각합니다 저는 죽어도 선생이 되지...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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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은선 [상자를 열지 않는 사람]
( 코스모스도서관 | 25-01-13 19: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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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자꾸 귤! 귤! 소리치며 집안을 뛰어다닌다 귤 없어 귤 없어 나는 대답하는데 한밤중에 귤 눈 내리는 밤 오래 걸어 편의점에 다녀왔다 잠 잠 속의 일이었다 이불이 축축해지고 머리가 덤불이 되어 눈뜰 때 날아가는 새 어느 날은 목욕을 하며 종말이 ...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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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영 [최단경로]
( 코스모스도서관 | 25-01-02 19: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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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에 취해 노래를 만든 가수들은 마약에 취해 만든 노래를 구별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리듬과 멜로디와 비트가 있다고. 혜서는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기일이면 그날 방송 내내 그녀의 노래만 트는 한 선배가 언젠가 그런 말을 했던... Tag: 밑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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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연 [당근밭 걷기]
( 코스모스도서관 | 24-12-27 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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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을 태운다 사실은 돌 모양의 초 누가 나를 녹였지? 누가 나의 흐르는 모양을 관찰하고 있지? 돌이 나의 질문을 대신해주기를 기대했는데 돌은 자신이 초라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하다 무고하게 빛난다 돌이 녹는 모양을 본다 돌 아래 흰 종이를 받쳐두어서 흐...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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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천사들의 도시]
( 코스모스도서관 | 24-12-05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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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7시쯤, 우리를 비추던 태양이 한발 물러서 천천히 지구 반대편으로 공간 이동을 할 때면 어디선가 종소리가 들린다고 너는 말하곤 했다. 미국 중서부 미네소타주의 작은 마을, 독일계와 스칸디나비아계의 혈통을 이어받은 푸른 눈의 사람들은 저녁 7시,... Tag: 밑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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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찬 [희지의 세계]
( 코스모스도서관 | 24-12-11 1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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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는 양들을 이끌고 돌아가야 한다 희지는 목양견 미주를 부르고 목양견 미주는 양들을 이끌고 목장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생활도 오래되었다 무사히 양들이 돌아온 것을 보면 희지는 만족스럽다 기도를 올리고 짧게 사랑을 나눈 뒤 희지는 저녁을 먹는다 초...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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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겨울을 지나가다]
( 코스모스도서관 | 24-11-28 20: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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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연이어 말했다. 엄마의 입에서 흘러나온 연한 입김이 내리는 눈송이 사이로 퍼져갔다. 그 입김은 엄마의 장기와 피가 아직은 온전하게 움직이고 있음을 증명하기에 나는 안도했다. 안도하고, 또 안도했다. 바로 다음 날, 나는 나를 포함한 네 명의 ... Tag: 밑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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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효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개는 자유로웠고]
( 코스모스도서관 | 24-12-01 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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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를 넘기 전까지 염소는 온순했다 의심하기 전까지 거짓은 단순했다 무서워지기 전까지 표정은 희박했으며 선택하기 전까지 분명히 기회가 있었다 말하지 못해서, 말보다 자신이 더 확실해서 드러나기 전까지 증거는 숨어 있었다 날씨가 되기 전까지 안...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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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태운 [기억 몸짓]
( 코스모스도서관 | 24-11-21 19: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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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그 계절이 되는. 나는 할머니가 살았던 곳의 담벼락을 거닐고 있었는데 문득 그 계절을 걷게 되면 내게 파도가 밀려오는 듯하고 나는 순간 놀라 다음 걸음을 걷고 또 놀라 그다음 걸음을 걷고....... 놀라서 걷는 걸음이 다음 걸음이 되는. 거기서 ...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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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말선 [재스민 향기는 어두운 두 개의 콧구멍을 지나서 탄생했다]
( 코스모스도서관 | 24-11-13 20: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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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물이 튀지 않게 소매 좀 걷어줘요 당신은 손을 쓰기 전 내게 부탁한다 이만큼이면 될까요 나는 소매 속에서 당신의 손목을 꺼내준다 후, 당신은 참은 숨을 쉬기 시작한다 코만 나왔으니 조금 더 걷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당신은 손도 쓰지 않은 채 내게...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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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승유 [생명력 전개]
( 코스모스도서관 | 24-11-11 19: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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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간 뭘 할 수 있겠어요 고개를 내저으면서도 칫솔을 내준 주인과 여름을 보냈다. 비가 오려나봐요 그러면 얼른 뛰어가 빨래를 걷어 오고 오늘은 해가 나려나봐요 그러면 빨래를 내다 널면서 하루종일 비가 오던 날에는 우산을 쓰고 마을을 걸어다녔다. 어디... Tag: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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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 [돌담에 속삭이는]
( 코스모스도서관 | 24-11-01 19: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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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우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우리는 그저 혼란한 생각과 공허한 마음이 만들어내는 허황한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라고. 설사 존재한다고 치더라도 안개, 수증기, 아지랑이 따위처럼 아주 미미하고 하찮고 있으나 ... Tag: 밑줄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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